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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의 풀밭

기사승인 2012.03.08  17: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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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선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몇 해 째 꽃이 피지 않는 풀밭이 있었다. 풀밭 한 켠이 노래지고 있었고, 시들병은 풀밭 전체로 번질 조짐이었다.

풀들은 책임자인 사마귀가 벌과 나비를 다 잡아먹은 게 아닐까 의심하며 웅성거렸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그들은 새로운 책임자를 뽑기로 결정했다.

거미, 무당벌레, 개미, 지렁이가 후보로 나섰다. 거미는 해충박멸을, 무당벌레는 진드기 없는 풀밭을, 개미는 알뜰한 풀밭살림을 약속했다. 지렁이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메마른 흙을 기름지게 해 왔듯이, 앞으로도 풀뿌리가 잘 뻗을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일구겠다며 지지를 부탁했다.

전 책임자인 사마귀도 다시 기회를 달라고 풀들 앞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사마귀는 벌과 나비가 춤추게 될 꽃동산 설계를 마무리 중에 있으며 풀밭을 지상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자는 자신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에게 쏠린 의구심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하늘에 맹세컨대, 저는 벌과 나비를 해친 적이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메뚜기들로부터 여러분을 지키려고 애썼을 뿐입니다. 누가 메뚜기 떼를 막아줄 수 있겠습니까.”

사마귀의 말과 그가 내비친 눈물 한 두어 방울은 풀들의 의심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풀잎들 속에 웅크린 불안을 자극했다. 의아스런 눈을 하고 갸우뚱거리던 풀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여기저기에서 사마귀가 정말로 벌과 나비를 끌어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풀밭을 지켜줄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사마귀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몇 해 전 해충들의 습격에 때맞추어 풀밭에서 사라졌던 사마귀의 행적만이 아니라, 이를 미심쩍어하던 풀의 목을 톱발로 내려치던 일마저 잊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가벼운 풀머리들의 고개가 사마귀한테 기울었다. 제 풀포기 수 늘리는 데만 정신 쓰던 풀들까지 사마귀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 무리의 풀들이 사마귀를 반대했다. 그들은 사마귀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해충을 끌어들였다는 수상한 풍문은 물론, 풀들이 꽃피우지 못하는 시들병에 대해서도 해명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바람 부는 쪽으로 휩쓸려 눕는 수많은 풀들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풀밭은 또다시 사마귀에게 맡겨졌다. 밤이면 메뚜기들이 어둠을 타고 풀밭으로 들어왔다. 사마귀는 메뚜기들에게 풀밭 한 쪽을 내어 주는 대신, 그들 중 두어 마리를 덮쳤다.


한정선 작가

한정선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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