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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지고 푸르다

기사승인 2011.01.24  12: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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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석태 신부가 수단 남부의 톤즈(TONJ)라는 곳에서 헌신적인 봉사를 하다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감동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잘 모르던 나라에서도 뜻깊은 삶을 살다간 영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단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수단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단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100명도 되지않고(2004년기준)무역액도 1억 달러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단이란 어떤 나라인가? 수단은 두가지 의미로 쓰여진다. 하나는 지역으로서의 수단이 있고, 또 하나는 나라로서의 수단이다. 지역으로서의 수단은 언어에서 비롯된다. 수단이란 아랍어로 ‘검다(黑)’를 의미하는 ‘수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라비아인이나 베르베르인과 같은 ‘흰(베이다)’ 사람들이 사는 지중해 연안인 북부아프리카를 ‘베이단’이라고 부른 데 대해 사하라 사막과 그 남쪽의 흑인 거주지역을 추상적으로 ‘흑인의 나라’라고 총칭하여 ‘수단’으로 이름지었다. 그러므로 사하라 사막의 남쪽 전체가 수단이라 불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유럽인이 기니만 연안을 기니라고 부르고, 콩고 분지의 주변을 널리 콩고라 불렀던 것처럼 유럽인의 지역 개념으로서는 수단이 옛날의 프랑스령 수단(지금의 말리 공화국)과 현재의 수단 공화국을 잇는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이 수단지역의 주민은 5000만 명 전후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부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아랍 문화와 이슬람교)와 에디오피아가(기독교)가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나라로서의 수단을 보면 이런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 BC 30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는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했고, 누비아 지방에 이집트 문화를 침투시켰다. 그후 BC 8세기 전반에는 누비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노예국가가 형성되어 1∼3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3세기에 에티오피아 유목민들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6세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유입되었으나 7세기 중반에 아랍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후 13∼15세기에는 이들 아랍인들은 원주민들과 뒤섞여 수단인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어를 사용했다.1819∼1822년에는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종속되어 있던 이집트에 다시 정복되었으며, 1870년대에는 이집트를 장악한 영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1877년부터 영국인 총독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인 수단의 내전으로 점철된 역사는 영국 식민지 정책의 유산이다. 영국의 통치방식은 분할통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중적인 통치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에 지원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국은 두 지역에 별도 행정기구를 두어 통치함으로써 이런 차이를 심화시켰다. 심지어 1924년부터는 말라리아의 확산을 막는다며 북위 10도 이북에 사는 사람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8도 이남에 사는 사람은 북쪽으로 갈 수 없게까지 했다. 또 남쪽 지역에 이슬람교 포교를 차단하고 기독교를 전파했다.

영국이 뿌린 분쟁의 씨는 수단의 독립 1년 전인 1955년에 내전으로 발화했다. 72년까지 지속했던 내전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재로 남부 수단에 자치를 주기로 하고 끝났다. 하지만 북부의 집권세력이 남부마저 이슬람화하겠다며 83년 성전을 선포하면서 내전이 재개됐다. 이 내전은 20년 넘게 지속되며 2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고 400만명 이상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끝에 2005년 평화협정으로 간신히 종결됐다. 이번 투표는 그 평화협정에 따른 것이다.

수단 내전 종식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2003년 다르푸르(Darfur) 사태가 발생하면서 평화를 향한 노력은 큰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다. 다르푸르 사태는 북부의 친정부 아랍계 세력과 남부 아프리카 주민 사이의 갈등 속에서 4년 동안 최소 20만 명이 숨지고,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2005년 1월 9일 포괄적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남북내전은 형식적으로는 종식을 맞게 되었다.

지난 1월 16일 수단의 내전을 끝내는 국민투표가 마무리됐다. 별일이 없다면 남부 수단은 올 7월 세계 193번째 독립국이 된다. 주민들의 독립 열망을 고려할 때 독립안 통과는 기정사실로 여겨지지만, 독립과 그 이후의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바로 이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이태석 신부가 1년 전 1월 14일 선종했다. 우는 것을 불명예로 여겨 좀처럼 울지 않는 수단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죽기직전 낸 이태석 신부의 저서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라는 책의 제목이 이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정창수 편집위원,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정창수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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