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시민사회 ‘일상적 싱크탱크 기능’ 강화돼야”

기사승인 2021.01.11  16:28:34

공유
default_news_ad1

- NGO 정책생산능력 높이고 정책사전검증 과정 체계화 필요

‘정책 떴다방’ 구조 개선은 큰 틀에서 국가적 ‘정책 환류시스템’ 개혁

‘떴다방’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파트 분양 현장에 임시로 천막을 세우고 거래를 하는 곳을 가리킨다. 주요 선거의 공약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정책 떴다방’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임시로 구성된 팀이 비공개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부동산 떴다방’과 닮은 점이 있다.

▲ <2020총선넷> 참여단체들이 지난해 4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퇴행하는 정치를 바꾸고 한국 사회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권자들이 총선에 참여해야 한다며 유권자들에게 투표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알다시피 선거에서 공약을 제시했던 후보들은 당선 이후 공약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교육감 역시 임기 시작과 함께 공약 추진계획을 세우고,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되면 그의 공약 역시 전부 추인된 것인가? 정치학계에선 오랜 논쟁 주제였지만 학문 밖 현실세계에선 다르다. 당연히 공약 전체가 추인됐으며, 선출직 당선자는 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선거 때 ‘매니페스토 운동’을 했던 시민단체 역시 공약의 이행 비율을 점검하는데, 이행의 질적 측면보다는 양적 지표를 주로 감시한다. 그 결과가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치므로 선출직 당선자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선거 공약 중에는 선정 과정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것들도 많지만, 폐기와 선정의 갈림길에 섰던 이런 공약도 당선 이후에는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정책 떴다방’의 프로세스?

선거를 앞두고 ‘정책 떴다방’ 안에서 공약이 준비되는 과정은 대개 이렇다. 교수 등 주로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이들이 모인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도 대개는 현역이 아닌 이들이다. 정당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선 이런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다. 교육 공약에는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의 성과를 반영하기 쉬운데, 이는 큰 장점인 동시에 한계도 있다. 활동가나 연구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목표 삼아온 의제나 전공 주제가 가장 절박하기 마련이나 공약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장관계가 생기고, 결국 모인 이들이 각자 하나씩 넣는 식으로 공약이 정해질 때가 많다.

이처럼 많은 공약이 갈등봉합 논리와 득표 계산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공약들이 함께 발표될 때도 있다. 당선 이후 어떤 공약을 이행하려면 그와 충돌하는 다른 공약은 버려야 하는데 결국 지지율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을 따르게 된다. 공약과는 반대로 수능 반영 비율이 늘어난 현 정부의 대입 정책도 비슷한 사례다.

국가적 정책 환류시스템의 개혁 필요

‘정책 떴다방’ 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큰 틀에서 국가적 정책 환류시스템의 개혁이다. 떴다방 방식으로 공약을 만드는 구조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본다. 지난 30여년의 민주화과정은 억압적인 관치형 국가를 극복하고 민주적인 개방형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국가에 의한 옆으로부터의 감시와 시민사회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감시를 받는 사회적-개방형 시장으로의 변화가 있었다. 이를 추동한 것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이었다. 과거형 국가와 시장에 대항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강제하는 힘을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이 만들어냈고,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과거의 후진국적 상태에서 일정하게 벗어났다.

억압적 국가가 물러나고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분출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 내 모든 집단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확대를 위해 투쟁할 자세가 되어 있다. 예컨대 부동산 기득권층도 자신의 이익 여하에 따라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가 ‘투쟁’ 구호를 외치는 사회가 되었다. 나아가 이제 시민사회 내 이익집단이 다양해져 이익의 분화 및 이익들 간의 갈등도 확대되었다. 노동운동계 내부에도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균열이 존재한다. 친노동‧친시민사회 마인드로 직무를 시작한 나도 교사노조, 행정직 노조, 공무직 노조 등 16개의 노조와 마주하면서 행정을 해야 하는 조건에 놓여 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여전한 역동성을 상징하는 ‘성공의 위기’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품고 행동하는 국민들과 집단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이익투쟁이 제한 없이 이루어지며 상호충돌하는 조건 위에서, 이제 한단계 높은 민주적 정책순환 과정을 어떻게 작동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온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이렇다. 공약을 준비하는 과정, 즉 시민사회 및 민간 부문의 요구와 의제가 공공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공론화 과정이 체계화되고 지금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투명한 공개는 정책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인 사실과 통계에 바탕을 둔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리한 공약을 걸러낼 수 있다(이러한 시뮬레이션은 보수적 입장에서도 진보적 입장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도 공론화장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아홉개를 가진 이가 열개를 채우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며 절규할 때가 있다. 그 목소리가 더 크다고 해서, 한개도 못 가진 이보다 그를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정책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 공감의 촉수가 내부로만 뻗어 있는 이익집단을 설득할 근거가 생긴다. 이를 바탕으로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소모적인 갈등을 지금보다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당과 (시민사회에서의 싱크탱크인) 시민사회단체의 정책 생산능력이 강화되어야 하고, 정책의 사전검증 과정도 체계화되어야 한다. 정당의 정책역량 강화에도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에 일정하게 정당 및 의회 중심적 요소를 강화해갈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일상적인 싱크탱크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싱크탱크가 만들어지면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원칙적인 의제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권력기관에 의해 수용되어 실행될 때 벌어질 의도치 않은 문제들을 시뮬레이션하는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책 떴다방’ 구조를 넘어설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위해 우리의 집단적인 지혜를 모아보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2

관련기사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