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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愛), 새 아침에 늘 우리 사랑해요. 어린 아이처럼…

기사승인 2019.01.14  14: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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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새해 축하-사랑이 별거더냐

손흥민의 축구가 아름답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차범근을 추억한다. 박지성이 휘젓더니 흥민으로 무르익는다. 독일을 깨더니 이제 세계를 홀릴 태세다. 히딩크를 사랑했더니 박항서가 흔든다. 다시 월드컵의 광풍이 떠오른다. 한국아, 젊음들아, 세상을 주름잡아라.

젊고 당당한 나라 베트남 사람들의 기쁨이 즐겁고, 박항서와 그의 조국을 생각해주는 통 큰 금도(襟度)의 흔쾌함이 고맙다. 현대사를 팔씨름에 비긴다면 우린 그들에게 거푸 두 판을 진 셈이다. 그들의 우승을 열렬히 응원한 이 땅의 마음들은 여러 의미가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축구 이슈에서 우리가 찾은 공약수는 무엇인가? 사랑이다. 한 톨 사심(邪心) 없는, 나라와 겨레를 향한 벅찬 자존의 열정, 애국심(愛國心)인 것이다. 베트남의 그들처럼, 우리도 월드컵의 그 추억으로 다시 가슴 뛰지 않는가?

평화를 만드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스포츠의 뜻을 생각한다.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려 한다는 ‘우민화(愚民化) 스포츠’란 해석은 어리석은 단견(短見)같다. 두 번의 올림픽, 월드컵도 치른 경험을 되새겨보자. 우리의 품은 인류를 너끈히 보듬는다. 도량(度量) 큰 한국이다.

체(體) 덕(德) 지(知)의 으뜸인 신체, 그 기량과 아름다움을 겨루고 확장(擴張)하는 뜻 말고도, 여러 나라가 가슴으로, 민낯으로 만나는 축제다. 죽이거나 파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싸움’은 가능하다.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친해지고, 해묵은 증오 덜어낸다. 인류 평화의 기술이다.

올림픽 입장식.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자랑스레 상징 깃발 흔들며 인류 향해 가슴을 여는 저 푸릇푸릇한 애국심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시시한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따위를 훌쩍 넘어설 힘이 있다.

이해관계에 얽혀 제 편견과 이끗을 정의라며 똥고집부리는 정치인 등 기성세대나 국제 정치경제 시스템의 쩨쩨함이 문득 시시하고 가소롭지 않은가? 언제쯤 지구촌 그 사람들은 철이 좀 들꼬! 부끄러움을 잃고 사는 인간들을 워즈워스 시(詩)의 어린이는 하릴 없이 웃어준다.

무지개 걸린 하늘 보며 가슴 설레지 않는 이가 있을까? 어릴 때처럼 평생을 설레며 살겠다던 영국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이렇게 선언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그리고는 자연의 경건함(natural piety)에 늘 마음 얹어두고 살 수 있기를 염원한다. ‘무지개’(Rainbow) 또는 ‘내 가슴은 뛰는구나’(My Heart Leaps Up)라는 제목의 짧은, 그러나 뜻깊은 시다. 이 경건함은 ‘나’(ego 자아自我)의 생겨난 까닭을 우주에 묻는 조용한 마음이다.

어떤 사랑이건 사랑은 한없이 기쁘다. 다만, 이 경건(敬虔)이 바탕이어야 한다. 어린이처럼 하늘을 기뻐할 수 있음을 내내 기원하는 것을 말함이다. “너희가 어린 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지 못하리라...”고 했던 예수의 어록(語錄)도 제대로 새겨야 한다. 그래야 더 기쁘다.

축구 같은, 스포츠 향한 열정과 갈채는 워즈워스나 예수의 어린이와 닮았다. 그러나 나라 위한 애국이건 이성 향한 연애(戀愛)건, 사랑은 나를 뺀 살아 숨 쉬는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경건과 통하는 이 마음, 잊거나 잃으면 안 된다. 눈 먼 광란(狂亂)과 달라야 하는 것이니.

사랑은 거대하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노래방 가사집의 ‘사랑’ 제목 목록만 봐도 실감난다. 이타적(利他的) 사랑 아가페와 이기적이란 에로스의 구분도 ‘사랑론’ 첫 장에 안 빠진다. 그만큼 우리 사랑은 크고 많은가? 어원이 같으니 삶(live)도 사랑(love)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

‘사랑이 별거더냐 좋아하면 사랑이지, 이래저래 정이 들면 호박꽃도 꽃이란다...’ 호박꽃이 왜 꽃이 아니래? 좋은 노래지만, 그 차별(差別)하는 좀스런 심보가 문제다. 그 좀스러움만 지우면 우린 마침내 이길 수 있다. 너와 나, 모두 꽃이 아니냐?

‘3만 달러 소득’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것, 어린 아이를 섬기는 것이 행복 부를 사랑이다. 잘 사는 것이다. 정치이기도 하다.

▲ 베트남 나트랑의 한 식당 내부. 박항서 감독과 대표팀을 응원하는 열망이 베트남을 뒤덮고 있다. 독자 이율표 씨(약사·인천 계양구 양지로)가 출장길에 전해온 소식과 사진이다.

토막새김

절묘하고 속이 먹먹한 愛(애)

진시황(秦始皇) 때 글자체인 전서(篆書)의 사랑을 뜻하는 글자는 ‘사랑하는 마음’의 절절한 표현이다. 사랑은 이렇게 말도 뜻도 곱지만, 글자 또한 절묘하다. 愛(애)는 그 글자의 현대 디자인, 해서체(楷書體)다. 요즘 중국어 간체자로는 爱다.

피카소 류(流)에 빗대어보자면, 최고 수준의 추상화가 아닐까. 한자는, 동이겨레도 큰 몫을 했던 동아시아지중해문명(황하문명)의 걸작 중 하나다. 글자가 그림 됐으니 추상성 강한 도안(디자인)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그 사물에 딱 들어맞는 뜻과 함께 이치(理致)를 담은 이유다.

갑골문에서 비롯해 3000년 이상 그 그림이 간략화되고 다듬어져 사물의 이름(글자)이 됐다. 한글 ‘가나다’나 영어 ‘ABC’ 같은 알파벳과는 만들어진 방식이나 작동(作動) 원리가 다르다. 한자는 그림(뜻) 품고, 한글과 영어의 글자는 소리 품는다. 뜻글자와 소리글자의 차이다.

심장(하트)에 담은 말을 할까 말까 입을 한 곳으로 향한 (사람의) 웃통 아래, 발(다리)을 뒤집은 모양 그림을 붙였다. 상사병(相思病)일까? 그리워 가슴 죄며 동네방네 휘돌면서 큰 소리로 하소연한다. 속이 먹먹하다. 당신이 그 시대 옛사람이라면 저 ‘사랑’을 어떻게 그려낼까?

요즘 글자를 분해하면 愛는 조(爫 손 손톱) 멱(冖 덥다 cover) 심(心) 쇠(夊 천천히 걷다) 등 4자의 합체다. 중심 이미지는 心이고, 나머지는 옛 그림이 오래 닳고 굴러온 결과다. 발을 뒤집은 그림이 夊가 된 것은 일정 정도 원래 의미를 반영한 것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글자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쓰도록 도안(圖案)을 고치기도 했으리라. 이때 기왕 만들어져 있던 글자 중 모양이나 뜻이 비슷한 글자로 바꾸거나 합성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으로 본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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