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만으로 가계통신비 낮춘다는 건 대국민 사기다
이통3사 독과점, 시장포화상태, 단통법 폐지해도 보조금 경쟁 유인 없어
지금 필요한 건 요금인하, 5G 속도·품질 경쟁이지 보조금 경쟁 어려워
정부여당이 오늘(10/29) 열린 ‘민생 입법과제 점검 당정 협의회’에서 11월 정기국회 내에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에관한법률)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동통신 3사의 보조금 상한을 없애고 지원금 경쟁을 통해 가계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가계통신비 대책 없이 단통법 폐지만으로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춘다는 것은 ‘대국민 사기’에 불과하다. 앞서 국민의힘은 단통법을 폐지하고 선택약정 할인, 불합리한 보조금 차별 행위에 대한 제재 등 단통법에 있던 일부 조항을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제출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장려금과 지원금 등의 자료를 과기부와 방통위에 제출하도록 하고, 중고단말기 활성화를 위한 안심거래 인증제 도입, 판매점에 대한 이통사의 책임 강화 등 일부 진전된 내용이 담겨있긴 하지만,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보편요금제, 분리공시제, 요금적정성 심사제, 원가자료 공시제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전혀 담겨져있지 않다.
정부여당은 단통법 폐지에 그치지 말고 가계통신비를 근본적으로 낮출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대책 없이 단통법만 덜컥 폐지했다가는 이통사들의 보조금 경쟁도 일어나지 않고 시장만 더욱 혼탁해져,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높은 가계통신비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이미 새로운 신규가입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포화상태의 이통3사 독과점 체제에서, 단통법을 폐지해 보조금 상한을 없애면 이통3사가 앞다투어 보조금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단통법이 도입될 당시만 하더라도 3G 서비스에서 LTE 서비스로 넘어가며 이통3사가 앞다투어 불법보조금까지 동원하며 신규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의 시장독과점이 5대 3대 2로 10년 넘게 공고히 유지되고 있고, 새로운 단말기 출시 외에는 속도나 서비스 경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는 단통법이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이통3사가 굳이 보조금 경쟁을 벌일 유인이 없다. 설사 일부 보조금 경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신규단말기가 출시되었을 때 극소수의 가입자들에게만 돌아가는 기존의 불법보조금과 같은 ‘반짝지원’에 그치고, 나머지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높은 가계통신비를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이통3사와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막대한 폭리를 취하고 있는 LTE 요금 인하 경쟁, 28GHz 주파수 구간 투자를 통한 ‘진짜 5G’ 속도 경쟁, 인빌딩 시스템 구축과 5G 망투자를 통한 5G 품질 경쟁이지, 실효성도 전혀 담보되지 않는 보조금 경쟁의 판을 깔아주는 것이 아니다.
단통법이 지금처럼 ‘계륵’이 된 데에는 애초부터 반쪽짜리 단통법을 제정하고, 추가적인 통신비 인하 대책에는 손을 놓았던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크다. 애초에 단통법이 도입될 때만 하더라도 보조금 상한을 두어 시장의 혼탁함을 막고,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통신사 지원금과 단말기 제조사 장려금을 분리공시하여 장기적으로 통신비와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려 했으나 그 어떤 정부도 불법보조금에 대한 제재만 했을 뿐 분리공시제와 같은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 결과 국민들은 여전히 소득 대비 높은 가계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는데도, 이통3사는 통신비는 통신비대로 높이고 불법보조금에 들어갈 마케팅비는 절감해 연 4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폭리를 취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 요금적정성 심사 통해 LTE·5G 요금 낮춰야
민주당도 단통법 성과 집착말고 보편요금제 도입·유보신고제 강화해야
우여곡절 끝에 단통법을 폐지하게 된 만큼 이번에야말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내용만으로는 결국 또 다시 이통3사만 웃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여야 국회는 국민의힘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는데 그치지 말고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유보신고제 대상 범위 확대, 알뜰폰 시장에서의 이통3사 자회사 점유율 상한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오히려 제대로 된 요금제 적정성 심의를 위해 현행 15일에 불과한 유보신고제 기간을 최소 1개월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이통3사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도 현재 발의된 60%에서 50% 미만으로 더욱 낮춰야 한다. 또한 지난 정부에서 정부안까지 발의했던 보편요금제를 도입하여 2-3만원대 중저가요금제 구간의 요금경쟁을 유도하는 한편, 요금적정성 심사제를 강화하여 이미 투자비 회수가 끝나 10조원이 넘는 순수익을 남긴 LTE 서비스에 반값요금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또한 이통3사가 28GHz 주파수 구간을 반납하고 5G 기지국 투자를 줄이고 있는만큼 애초에 LTE 서비스 대비 20배 빠른 5G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지금의 5G 요금제가 과연 적정한지 재검토해야 한다.
만약 이번 정기국회에서 거대 양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통으로 약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장의 성과에 집착해 졸속으로 단통법 폐지를 밀어부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국민에게 돌아가고, 이통3사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이동통신서비스는 국민 모두의 공공자산인 주파수를 기반으로 제공되고, 전국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우리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간서비스이기 때문에 전기, 수도, 도로와 같은 공공서비스로서의 성격이 매우 높은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통신서비스가 민간기업에 의해 제공되고 있긴 하지만 주파수 할당을 통한 면허사업으로 유지되고 있고, 우리 전기통신사업법에도 통신요금을 정할 때는 이용자들이 ‘공평하고 저렴하게’ 통신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통사들의 선의에 기대서만은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할 수 없고 정부와 국회가 가진 공적인 노력을 다해야 한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국회가 이미 지난 단통법 시행 과정에서 반쪽짜리 제도를 추진해 실패했던 과오를 되새겨,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가계통신비 인하 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2024년 10월 29일)
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