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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 살았다

기사승인 2024.03.02  13: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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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따뜻한 하루, 정리=양병철 기자

105년 전 그날, 3월 1일.
목숨 바쳐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갖은 고문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롭게 싸운
대한의 독립운동가들...

따뜻한 하루는 삼일절 105주년을 맞아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 나라 사랑의 마음을 기리고
그분들의 후손을 돕는 독립유공자 후손 돕기 캠페인,
‘대한이 살았다’를 진행합니다.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유관순 열사.
음력 3월 1일인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날을 기점으로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임을 당했고,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 형을 언도받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갇혔는데
그곳에는 심영식,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등
7명의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2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함께 생활했는데
축사보다 열악한 옥중에서 ‘대한이 살았다’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공포를 달랬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견뎠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소원은 조국의 독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꿈꾸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향년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유관순 열사가 그렇게 떠나고
독립운동을 했던 집안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의 막내 남동생인 유관석 선생님은 당시 어린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일제에 체포되면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행여나 일본 헌병들이 보복할까 무서워
어린아이였던 유관석 선생님을 돌봐주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겨우 삶을 연명하던 유관석 선생님은
겨우 6살이었던 아들 유장부 님을 남겨놓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장부 님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없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도 오직 유관순 열사의 조카라는
명예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살았습니다.

유장부 님은 올해 86세로,
노환으로 몸 여기저기가 불편한 상황입니다.
지난해까지는 건물 청소와 주차 관리 일을 하셨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못하셔서 생활고를 겪고 계십니다.

=====================================

과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대한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지만,
지금의 후손들에게 남은 건
명예와 가난뿐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따뜻한 하루 가족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독립유공자 후손 돕기’ 후원 계좌 =
우리은행 : 1005-003-162072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

정기 후원에 동참해 주시면 더 큰 힘이 됩니다.
3천원 정기 후원을 해주시면
‘대한이 살았다’ 팔찌를,
1만원 정기 후원을 해주시면
‘대한이 살았다’ 팔찌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태극기를
함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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