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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부의 무모한 ‘가치외교’

기사승인 2023.06.03  21: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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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윤석열정부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윤정부는 대외전략의 기조이자 핵심 목표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출범했고, 취임 1주년의 가장 큰 성과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한미동맹을 글로벌 ‘가치동맹’으로 격상시켰으며 이를 통해 한미일 협력을 추진했다는 ‘가치 중심의 외교’를 꼽고 있다. 과연 그런가?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인 작년 5월에 개최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을 전면에 내건 바이든 정부의 세계전략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며 한미동맹을 ‘포괄적 글로벌 전략동맹’으로 강화해나갈 것을 천명했다. 6월에는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한 단합된 대응을 추진하는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한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채 ‘바이든/날리면’ 구설만 낳았다. 11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미일 협력을 천명한 ‘프놈펜선언’을 발표했고, 12월 말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모델로 한 한국판 인‧태 전략을 발표하였다.

한미일 협력 강화는 올 3월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정부는 3‧1절 기념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주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며,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전면적 협력의 파트너로 규정했다.

곧이어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관련 판결을 무력화하는, 즉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방일을 앞두고 가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며 한일정상회담을 강행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주고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를 취하하는 등 일방적인 퍼주기라는 비판이 고조되었고 정권퇴진운동도 확산되었다. YTN에 직접 출연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정부는 “일본과 무엇을 주고받는 협상”을 도모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한일관계 개선의 의미를 북핵문제와 경제안보 등에서의 협력을 넘어 “한국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명분상 ‘국제사회에서 새로 태어났구나’ 이런 느낌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게 주는 것으로 설명했다(강조는 필자).

현 정부의 가치관 및 국제사회관의 핵심은 적대적·위계적 이분법에 바탕을 둔, 권력의 논리를 내면화한 자발적 복종의 ‘식민성’이다. 윤 대통령은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담 연설에서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에 더하여, 반지성주의로 대표되는 가짜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권위주의 세력’에 한국 보수의 태생적인 ‘타자’이자 ‘적’인 북한이 포함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이 규정한 적이라면, 후자는 윤석열-김태효식 ‘탈냉전-식민주의’ 한국 보수가 적대시하는 국내의 진보 운동권, 시민사회, 정당세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인식은 4‧19 기념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그대로 반복되었다.

윤정부의 가치관은 민주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자유의 기본은 모든 종류의 자의적인 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은 이견과 비판을 제기할 권리의 보호이다.

그러나 윤정부는 이러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서구 일반,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산층 재건과 중국 견제를 위하여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노조의 단결권 보호, 부유층에 대한 과세와 함께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나 임신중절 권리 등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며 감세와 시장의 혁신을 외치고 있다.

윤정부의 가치외교는 한국의 진보와 북한에 대한 이념투쟁인 동시에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구 중심의 위계적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의 성격을 띤다. 방미를 앞두고 윤 대통령은 서방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향후 군사적 지원의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고, ‘강제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를 밝히면서 대만해협 문제에서 미국의 입장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미국 정보당국이 한국의 우끄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윤정부 안보실장과 비서관의 대화를 도청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왔을 때, 김태효 차장은 미국이 악의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고 세계 최강국 미국의 도감청 능력은 ‘큰 자산’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윤정부의 ‘탈냉전-식민주의’는 미국의 선의와 능력에 대한 절대적 믿음, 미국 (패권) 예외주의의 ‘식민적’ 내면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로부터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윤정부가 가장 큰 성과로 선전하는, 확장억제 강화를 공약한 워싱턴선언은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제기했던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 가능성을 포기하는 댓가로 얻어진 것이며, 정상회담 직전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분석했듯 그간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실패의 산물이다.(David E. Sanger and Choe Sang-Hun, “Inside Biden’s Renewed Promise to Protest South Korea from Nuclear Weapons”)

전략동맹에서 가치동맹으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처하는 면에서 시대착오적이고 전략적으로 무모하다. 우선 이명박정부에서 추진된,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에서 미국과 전면적으로 협력한다는 전략동맹 구상 자체가 2007~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미국 패권의 쇠퇴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이다.

당시 글로벌 경제위기는 G7의 한계를 노정했고 이로 인해 G20이 조직되었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의 주도하에 G7이 단합하고 나토가 강화되고 있지만, 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립노선이 증명하듯 미국이 G20의 협조를 얻어 전지구적인 반(反)러시아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는 크게 서방과 러시아-중국 연합,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로 삼분된 상황이고, 이 느슨한 세 진영 안팎으로 개별 국가들의 각자도생,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윤정부가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중국‧러시아에 대한 이념적 대립으로 미국에 대한 인정투쟁에 적극 나선 지난 3월 이후, G7 국가들은 중국과의 전면적인 탈동조화가 아니라 탈리스크(de-risking), 즉 공존을 위한 위험완화로 대중정책의 초점을 옮겨가고 있었다.

서방의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는 건설되지 않는다. 특히 바이든의 미국은 한국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할 능력과 의지를 결여하고 있는 데서 더 나아가,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의 이름으로 자국에서 한국 기업의 반도체, 배터리 등의 생산을 강요하며 한국의 지속적 성장에 필요한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확장억제에만 의존하는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군사적 딜레마와 불안정을 높일 뿐이다. 중국의 성장이 정점을 찍고 주춤하더라도, 러시아가 우끄라이나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패권기획을 운영할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종합국력에서 미국의 우위도 유지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비동맹 노선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제정치의 교착 국면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을 회복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원자로를 팔러 다닌다고 한국의 경제성장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전략적으로, 미국에 올인하는 윤정부의 가치외교는 무책임하고 무모하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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