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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서사, 겨레말큰사전

기사승인 2022.07.30  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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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도상은 모국어의 백두대간을 걷고 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의 교류를 구상하고 남북합의와 사업의 진척에 이르기까지 문익환 목사님의 유지를 이은 형의 땀방울이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곳곳에 새겨 있습니다. 탈북인 조명철씨의 사업회 이사장 내정 소식을 접하고, 형의 안부를 묻습니다.

오래전, 문익환 목사님을 두고 이렇게 쓰셨지요. ‘성직자이기 전에 시인이었고, 만주 용정의 명동촌에서 윤동주 시인, 송몽규 동화작가와 함께 성장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목사님이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공동국어사전을 처음으로 제안한 까닭이 서사가 되어 전해져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행간에는 모국어를 아끼고 지금도 소중하게 벼리고 있는 분들이 보입니다. 고독한 작업 끝에 우리말갈래사전을 남겨주신 박용수 선생님과 어려운 시절 편찬사업을 이끌어주신 염무웅 선생님, 멀리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신 조선어학회의 어른들이 함께합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말을 다듬고 있는 남북 국어학자들의 수고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겨레말큰사전에 촘촘히 박힌 뭉클한 이야기들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는 데는 커다란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 자리에 어떤 건물을 새로 지을 것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지혜를 얻는 것은 둘째 치고, 미래를 걱정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어떻게 살아왔고, 삶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세계의 연장선상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주 혼자라는 것을 심각하게 느낍니다. 소통이 아주 다양해지고 쉬워졌지만, 애태우며 만남의 첫 문장을 곱씹고, 설레며 상상하고, 묻고 알아가며 기다리는 일이 줄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야기만 하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여깁니다. 자기의 앎을 확신합니다. 혼자가 되면서 공동의 목표도 잃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주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잊기 위한 것이라기엔 갈등의 골이 너무 깊습니다. 공격적인 개인주의 탓입니다. 정치는 갈등을 타개할 효과적 방법을 찾기는커녕 다른 기억을 부추깁니다.

앞뒤의 인연을 싹둑 자르고 역사를 사건으로 단편화시켜 그저 화제나 지식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사건은 발생한 그 시대의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걸 이용합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의도에서는 어제를 반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늘, 오늘뿐이었습니다. 어제 이야기를 꺼낼 양이면 이미 낡은 이야기로 취급되어 상호이해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제각기 적절하게 선택한 진실의 파편을 들고 진실이라 주장합니다. 자신의 파편을 내밀어 상대방의 파편과 맞춰보고 싶기도 할 것인데, 자신의 파편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조롱과 분노, 극단적 적개심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야말로 이데올로기다’라 했던 카를 만하임의 말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픕니다.

어머니, 겨레말, 뿌리로 돌아가는 길은 진실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라 여깁니다. 사건을 역사로 되돌리고 우리의 기억을 맞춰보는 일이라 여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자아를 되찾아 함께 미래로 가는 고단한 작업의 시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겨레말큰사전에는 자기 서사가 있습니다. 들꽃과 나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삶 속의 애환을 마을의 풍경처럼 표현한 사람들, 서러움과 분노를 늦은 밤의 문장으로 옮기며 숱한 언어를 탄생시킨 사람들, 그들과 겨레말큰사전은 함께 살아 움직입니다. 모국어로 서로를 이해하며 뜻을 모았던 사람들, 우리말의 분단을 안타깝게 여기며 겨레말큰사전남북편찬사업회를 일구었던 사람들, 그들이 이 유전자를 이어받았습니다.

이 서사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격이 필요합니다. 박용수 선생님은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알자’ 하셨습니다. 달라진 모국어를 마주하면서 진실의 파편을 맞춰보고픈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끊어진 서사를 이어 공동의 삶으로 묶어보려는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업의 상대에 대한 존중이 바탕에 깔려야 할 것입니다. 서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지금 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선언으로 동방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역사적 전진이 가능해졌습니다. 승패를 나누는 스포츠에서든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에서든 상대를 잘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합니다.

공동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로를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공존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도 존중의 결과입니다. 열매도 존중으로 맺어질 것입니다.

국민들은 정치나 이데올로기보다 모국어의 힘이 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국어를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반드시 뜻을 모으게 되고, 민족의 서사 역시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국민 개개인이 가진 수많은 말을 서사의 동아줄로 엮어내는 건 이제 ‘우리말로 겨레의 상처를 담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형과 남북 국어학자들의 몫입니다. 다시 역사의 시간을 견뎌내는 가운데 다른 기억이 같은 기억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밝혀질 것입니다. 겨레말큰사전은 그 자체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 전부입니다. 언젠가 남북 7천만 겨레를 잇고 ‘올제’(내일)의 우리를 또 깨워낼 것입니다.

지난 5년, 북촌 조선어학회 터를 지나다녔습니다. 만주의 독립운동 이상으로 치열했던 선생들의 삶에 매일 저를 이어보았습니다. 조명철 씨가 모국어 서사의 말석에라도 설 마음이 있길 바라봅니다. 남북 국어학자들의 만남도 조속히 이뤄내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결국 겨레말큰사전의 마침표는 형이 찍어야 할 터입니다. 형, 응원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잘 견뎌주시리라 믿습니다.

신동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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