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녹색이 아니다. 녹색분류체계 더 이상 누더기 되어선 안 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에 보낸 EU 지속가능 분류체계(EU-Taxonomy) 초안에 원자력이 포함된 것이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의해 보도되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EU 지속가능 분류체계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닌 초안일 뿐이며, EU는 지난해부터 원전의 지속가능 분류체계 포함여부를 놓고 회원국 간 치열한 갈등을 겪고 있다.
초안이 회원국에 회람된 후 당장 오스트리아 환경장관은 원전이 포함된 초안이 확정될 경우 소송을 예고했고, 독일 환경장관 역시 ‘파괴적 환경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수임을 지적했다.
또 보도된 바에 따르면 EU 지속가능 분류체계 초안에도 원자력은 대단히 제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신규 원전의 경우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처분 계획과 부지 및 자금 확보 등을 조건으로 달았으며,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 역시 높은 안전 기준을 요구한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몇몇 유럽연합 회원국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사실상 EU 지속가능 분류체계의 기준에 맞출 수 있는 원전 프로젝트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U 지속가능 분류체계 초안은 오히려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원자력 발전의 지속가능성 한계를 조목조목 확인한 것에 가깝다.
지난해 말인 12월 30일, 우리 정부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를 발표했다. 원전은 빠졌지만 논란 끝에 LNG 발전과 블루수소 등이 포함되며 녹색분류체계의 원칙적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기후위기·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한 금융 시장의 적극적 녹색금융 투자 활성화를 돕는 지침서인 녹색분류체계에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활동이 일부 포함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런데 EU 지속가능 분류체계 초안 내용이 보도된 후, 국내에서도 녹색분류체계에 원전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심각하게 후퇴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까지 포함해야 한다면 녹색분류체계는 원칙을 저버린 누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원전은 본질적으로 ‘녹색’이 될 수 없는 심각한 오염원이다. 우라늄 채굴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이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는 사례도 많고 운영 중인 원전 인근 주민들의 체내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다량 검출된다. 원전 운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량의 방사성폐기물 처분 또한 문제다. 처리 기술은 물론 정책적 대안도 없어 현재 임시로 원전 내 수조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원전으로 인한 대형 참사 위험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신화에 가깝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국내 원전은 여러 차례 비계획적인 정지·방사능 물질 유출 등의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이러한 사고 위험은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환 과정에 심각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원전 수출에 차질이 생긴다는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다. 녹색분류체계와 무관하게 세계적으로 원전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은 지속적으로 어려워져 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 파산 사례 등을 볼 때 원전 프로젝트는 안전성·환경성으로 인한 비용 리스크가 상시적으로 존재했으며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원전의 경제성은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위험하고 반환경적인 에너지원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것은 원전에 녹색분칠(Green Washing)을 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녹색분류체계는 분명하게 기후위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다른 환경적 오염·위험 역시 없는 경제활동을 규정하고 이러한 항목에 금융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LNG발전의 한시적 포함으로 이미 녹색분류체계는 불완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위험한 오염원인 원전까지 포함한다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결코 금융 시장에서 변별력과 신뢰성을 가지는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2022년 1월 6일)
환경운동연합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