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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화'가 사필귀정보다 더 정의롭다

기사승인 2020.09.30  21: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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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큰 정의’ 和(화)가 코로나 시대의 새 정치

2016년 박근혜 정권 때, 한 검사가 민감한 사안 다루는 특별검사팀의 팀장이 되면서 했던 말이 언론에 크게 났다. ‘살아있는 권력이든, 누구든 정도를 따를 것’이라 한 것이다.

‘일을 잘 하겠다’는 뜻에 불과할 이 말에 대한 이런 반응은, 정도를 따르지 않는 게 세상사라는 기자들(언론) 인식의 반증이리라.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위 의혹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직무상 기밀 누설 의혹과 관련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다.

▲ 세상의 미혹 깨뜨리는 산속 큰 종소리를 듣자. 우리 안의 경건함을 회복하자. (선암사 예불 범종 타종 모습, 이돈삼 사진)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퀴즈, 그 검사의 ‘정도’는 바른 길 가겠다는 정도였을까, 대충 정도껏 하겠다는 정도였을까? 힌트, 한자로 바른 길은 正道, 정도껏은 程度다. 힌트 또 하나, 사필귀정(事必歸正) 즉 세상일은 반드시 정도로 돌아온다. 그 정권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요즘 공정(公正)이란 말이 회자되면서 바를 정(正)자를 품은 단어 정의(正義)가 열쇠말로 떠올랐다. 말하자면, 내가 돈(재난지원금)을 못(덜) 받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하는 그런 관심사다. 트럼프 재선, 이딴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중요한 일 아닌가. ‘내 일’이니까.

9월 신문기사 한 대목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6일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불공정’이라고 규정한 이재명 지사를 향해 ‘공정의 기준이 뭐냐’고 따졌다... 공정(公正)은 공평한 정의다.

전에도 이 개념은 새뜻한 모습으로 여러 번 세상에 떠올랐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방아쇠 당긴 공정의 뜻, 앞으로도 숱한 이야기를 만들 전망이다. 그런데, 바름(正)은 뭐지? 正자의 출생의 비밀을 안다면, 문자 만들어지던 시기 옛사람들의 정치적 감각에 한 편 놀라게 된다.

‘나에게 좋은 것이 옳은 것 즉 정의’라는 속뜻이 담겼으니 황당하다 여기는 이도 있겠다.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놈들까지 지가 옳다고 을러대는 모습을 상상한다. 현실인데 어쩌랴.

속뜻, 출생의 비밀은 바로 그 글자의 바탕인 그림에 숨었다. 상형문자 얘기다. 자주 보고 듣는 그림이며 주제인데도 우리 언중(言衆)들 볼 때마다 새롭다 여기는 듯하다. 정의의 상대성(相對性) 때문이겠다. 정의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니. (이미지 참조)

그림의 네모는 입(口 구)이 아니다. 무찔러야 하는 적의 성(城)이다. 아래는 발(止 지) 그림이다. 보무당당, 적의 성 향하는 우리 군사의 행군이다. 이 둘의 합체가 正이다. 네모는 오랜 세월 지나며 차츰 ‘一’ 모양이 됐다. 하나(1)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이기는 것이 정의인 것이다.

허나, 상대방도 제가 이기는 것이 정의일 것이다. 이렇게 그림대로 뜻 새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 글자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살피는 것이 인문학이다. 나도 적도 다 옳다 주장한다면, 갈등 푸는 방법이 필시 있으리라. 공부의 쓸모다. 의대입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 없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어찌 내 이기는 것만이 정의일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효율이나 공리주의의 뜻으로 세상을 고민하게 하는 서양식 사고에 한때 우리 사회가 퍽 홀렸던 것으로 본다.

동양 전통인 덕(德)이나 인(仁)의 뜻을 서구문명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사람의) 통이 크다’는 말도 그들은 잘 모른다. 어우러짐 즉 화(和)라는 ‘더 큰 정의’가 있음을 가르쳐줘야 할 때다. 사필귀화(事必歸和)라는 새 말과 뜻을 떠올려본다.

코로나‘19를 맞는 인류의 여러 모습을 새롭게 살핀다. ‘세계의 표준이며 패권(覇權)’인 미국의 수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은 낯설고, 차라리 슬프다. 우리 사회에도 저들을 (부모처럼) 따르는 이들 있으니 또한 그렇다. 주가지수 같은, ’정의‘의 시장 가치일까.

뜻 품은 그림, 한자를 인문학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지성이다. 또 숨은그림찾기 놀이다.

▲ 정(正)의 옛 글자. 적의 성(네모)과 이곳으로 진군하는 발(止)을 그렸다. (강상헌 書)

토/막/새/김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흐르는 정치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삿된 것을 깨뜨려 바름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불교용어지만 이제는 보편적인 생활숙어가 됐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私)보다 질 나쁜, 악의적인 기운이 邪다.

이 숙어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정치(政治)라는 말의 政이다. 때려서(攵 때릴 복) 바르게 한다(正)는, 어원적 풀이다. 그런데 막상 정치는 자꾸만 사(私)와 사(邪)로 흐른다. 파사현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악함 때려 부수는 범종(梵鐘)과 법고(法鼓) 소리는 경건하다. 동양적 명상을 인류의 경건함으로 승화시킨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를 생각한다. 그는, 정의를 향한 열정(의 모습)은 갈등이나 마찰이 아니라고 했다.

요즘 한국인들은 우리 전통의 생각보다 헤세가 더 친숙할 수 있겠다. 일독을 권한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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