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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

기사승인 2020.05.19  17: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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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쓰기도없고쉼표도없고
마침표도없는글을읽는것은
매우불편한일입니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위에 글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문장을 읽고 쓰면서 지내고 있을지도
혹시 모릅니다.

1886년 7월 23세의 청년이었던 호머 헐버트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서양문화와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고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조선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호머 헐버트는
조선인보다도 조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책은 순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순간 미국인 선교사가 아닌 한글학자가 된 그는
미국에 한글 교본을 출간하는 등 다수의 논문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었는데
이 신문은 한글에 최초로 띄어쓰기를 실천한
한글 신문입니다.

그리고 헐버트 박사는 주시경 선생 등과 함께
한글을 연구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연구하고 발표했던 한글의 띄어쓰기를 이 신문에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한글의 뛰어남을 잘 알았던
호머 헐버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익히기 어려운 한자를 그만 버리고
한글을 채택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의 사후 195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을
그리고 2014년 한글날에는 대한민국 금관 문화 훈장까지
추서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유언대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1999년 50주기에 세워진 기념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구전으로만 전하는 아리랑을 최초로 악보로 정리했으며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황제의 밀서를 전하려 시도하고,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시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조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이다.
– 펄 벅 –

따뜻한 하루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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