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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疫의 장막’, 인간은 어진 존재인가?

기사승인 2020.01.31  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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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까뮤의 페스트가 던진 '천명(天命)'

‘장막(帳幕)을 거둬라.’라는 노랫말, 거기 안긴 뜻, 상징성 때문인지 한국판 히피 또는 문화적 반항의 이미지로 현대사에 흔적 남았다.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 첫머리, 양희은 이선희의 목소리로도 들었다.

장막은 안을 못 들여다보게 둘러친 커튼이다. 안에서 바깥을 보지 못하게도 한다. 대개는 비유적으로 쓰인다.

‘철(鐵)의 장막’ 아이언 커튼(Iron Curtain)은 ‘크렘린’과 함께 과거 소련의 별명이었다. ‘죽(竹 Bamboo 뱀부)의 장막’은 과거 중국의 이미지였다. 냉전(冷戰)의 시대, 공산주의 체제의 은밀함을 지키기 위한 장치를 빗대는 표현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8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현장 대응체계를 직접 점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독재자 박정희가 제 행실을 가리고 미화하기 위해 둘러친 ‘정보의 장막’도 있다. 그 얘기의 한 토막인 영화 ‘남산의 부장들’, 요즘 청년들에게는 낯선 상황이겠지만, ‘라떼’(나 때는)하는 꼰대들의 청년 시절 ‘사람 사는’ 환경이었다.

부끄럽고 또 억울하고... 하지만, 하늘 찔러 삿대질 하며 그렇게들 살았다. 오늘을 지은 요소 중의 하나다. 숨길 수 없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중국 땅 가운데 쯤 양자강 흐르는 큰 도시 우한(武漢·한국어는 무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기세가 무섭다. 프랑스 작가 A. 까뮤의 ‘페스트’(1947년)를 읽으며 경악했던 그 상황이 다시 실감난다. 더구나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진행형이다.

질병으로 인한 상황인 이 ‘역(疫)의 장막’이, ‘竹의 장막’이 끼친 결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제 시기를 놓친 대책들이 뒤늦게 난무하는 것도 그렇다. 이웃 나라 우리도 제 때 필요했던 수단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늘 새로운 ‘장막의 시대’를 만나는 것이다.

까뮤는 역사책보다 엄정(嚴正)하게 페스트가 창궐(猖獗)한 세상을 그 소설에서 그렸다. 한 때 기자였고 레지스탕스로 나치와 싸우기도 했던 그는 사실과 그 의미 뿐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페스트 장막 속 지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서로 소통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까뮤를 따라가며 여러 번 몸서리를 쳤다. 페스트의 장막 안에서 벌어지는 반(反)인간적, 반사회적 (범죄) 행위의 공범이 된 것 같은 조마조마한 가책(呵責)을 느낀 기억들도 새롭다. 인간 향한 감수성(感受性)이 인간마다 농도가 다르고, 모양도 가지각색임을 보는 것도 인상 깊었다.

그 장막 안의 절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몇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희망의 연대(連帶)는 인간을 긍정하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허나 인간의 노력으로 그 난관이 극복되지는 않았다. 자연이, 시간이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 저 모순을 해결했다.

흑사병(黑死病) 페스트는 천천히 끝났다. 인간은 무엇을 배웠을까? 지식과 신앙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럼에도 인간의 자각과 희생, 가치를 향한 불굴의 의지는 작가의 믿음이었다.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까뮤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빚어낸 괴테나 불굴의 혼(魂) 인간을 노래한 베토벤과도 같은 서양문명의 보석일러라. 덕(德)이라는 동양의 큰 개념에도 딱 들어맞는다. 동양은 아직 까뮤를 모른다. 노벨문학상도 받은 그는 전쟁에서 숱한 인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페스트’를 구상했다고 한다.

까뮤의 그 장막은 처절한 상황에서 인간(세상)의 새로운 작동 방식과 양식(良識)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새 모델을 그려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해피엔딩이 아니면서 결말에서 인간의 본디를 긍정하게 하는, 최소한 희망은 버리지 않게 하는 구조가 절묘하다.

‘이방인’과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의 작가 까뮤가 문학의 범주를 넘어 지금도 ‘부조리의 철학자’로 비중 있게 연구되는 이유일 터다.

사스(2003년·중국 발생)와 메르스(2012년·중동 발생)에 이어 아시아가 또 맞닥뜨린 우한 폐렴의 ‘疫의 장막’이 우리에게 주는 뜻은 무엇일까? 우리 인간은 어진 존재인가?

▲ ‘병이 있다’는 유질(有疾)의 뜻 갑골문자가 새겨진 3,500년 전 뼈 조각. 옆에 판 홈을 가열해 생긴 균열(龜裂)의 모양을 읽어 점을 치고 점괘를 그림글자로 새겼다. (갑골문합집 사진)

토/막/새/김

"그림문자는 바로 시(詩)"

‘병들어 기대다’라는 훈(訓)의 한자 녁(疒)은 질병 관련 문자 공부의 기본 틀이다. ‘병들어 기댈 녁 자(字)’라고 훈(뜻)과 음(音 소리)을 함께 읽는다.

첫 글자 갑골문의 疒자는 爿(나뭇조각 장)자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다. 爿은 침대이고 그 위의 획은 누워있는 사람이다. ‘앓으면 눕는다’는 간단한 그림으로 생로병사 풀잎 인생의 주요한 뜻을 그린 것이다. 그림문자는 바로 시(詩)인 것이다.

저 틀 속에 여러 그림(기호) 집어넣어 질병과 관련된 많은 제목과 뜻을 만들었다. 병(病) 질(疾)은 병의 일반적인 이름이고, 역(疫 전염병) 암(癌 악성종양) 학(瘧 학질) 양(瘍 종기) 개(疥 옴) 등은 구체적 병명, 통(痛 아픔) 증(症 증세) 양(痒 앓다) 등은 병의 상황을 말한다.

한 토막 더, 검역(檢疫)의 영어 quarantine(쿼런틴)은 ‘40’의 뜻 이탈리아어 quaranta(콰란타)에서 왔다. 잘 나가던 중세 베네치아에선 외국서 오는 배의 선원들을 바깥 섬에 40일간 격리한 다음 페스트 등 이상증상이 없어야 입항(入港)을 허가했다. 말(용어)의 유래는 다양하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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