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미국-이란 ‘7일간의 위기’가 던진 과제

기사승인 2020.01.17  11:21:09

공유
default_news_ad1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소련의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로 미-소는 전쟁 직전의 대립까지 치달았다. 냉전기를 대표하는 이 사건은 이른바 ‘13일간의 위기’로 불린다. 2020년 1월 3일, 신년 벽두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라크를 방문한 이란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암살된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7일간의 위기’로 명명한 미국-이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반미시위의 거센 물결 속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순교자’ 솔레이마니에 대한 보복을 맹세했다. 이를 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문화시설 공격을 포함한 ‘불비례적 대응’을 경고했다.

하메네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의 뺨을 때리듯이’ 지난 8일 이란은 이라크의 미군기지 두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미군 사상자는 없었다. 다음날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대신 무력 대응은 없다며 협상 기회를 열어두면서 ‘7일간의 위기’는 일단락되었다.

미국과 이란의 ‘약속 대련’

이번 위기는 트럼프와 워싱턴의 합작품이다. 솔레이마니 암살은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것이지만 전략적으로 보자면 몰상식에 가깝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의 배경부터 살펴보자면 오바마 행정부 때 맺은 이란핵합의(JCPOA, 포괄적 행동계획)를 2018년 5월에 트럼프가 파기해버린 데 따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공격하는 등 무력행동에 나선 것이 군사적 긴장의 신호탄이었다.

2019년 6월에는 이란이 미군의 정찰드론을 격추했는데, 트럼프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 미사일 포대와 레이더기지 공습을 승인해놓고는 예정된 공습 개시 10분 전에 부통령, 국방·국무 장관, 안보보좌관 등과 협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만약 공습이 실행됐다면 이란인 사상자가 최소 150명은 됐을 것이고, 이에 따른 이란의 군사적 반격도 확실했다.

트럼프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며 중동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을 종식하겠다고 공언해온 점을 고려해보면, 확전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악영향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었다.

트럼프는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강력하게 응징하는 지도자로 여겨지길 바라지만, 동시에 군사적 개입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작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유시설이 공격당했을 때 대응하지 않은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이 피해를 입었을 때는 상황이 다른데, 작년 12월 말에 이라크 민병대가 미군기지를 공격해 자국인 사망자가 발생하자 이라크-시리아 등지를 향한 보복공습을 지시했다. 이 공습으로 헤즈볼라 요원 25명이 사망했고, 이후 바그다드 미국대사관 앞에서는 미국에 대한 항의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대사관이 위험해진 상황은 트럼프가 솔레이마니 암살을 지시한 결정적 이유로 볼 수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미국대사관 피습사건에 발목을 잡혔고, 1979년 발생한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은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가 패배한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솔레이마니 암살 직후 공개적으로는 ‘문화시설 공격’ ‘불비례적 보복’을 공언하며 이란을 윽박질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위스 채널을 통해 이란이 ‘비례적으로’ 당한 만큼만 되돌려준다면 군사적 충돌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종의 ‘약속 대련’ 제안이었는데, 이란은 이에 응했다.

솔레이마니 암살은 트럼프의 총체적 실패

트럼프의 ‘약속 대련’은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유럽 동맹들과도 협의하지 않은 것이었고, 솔레이마니 암살을 어떻게 정당화할지에 대한 관련 부처 간의 조율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임박한 위협’에 따른 자위적 조치였다는 최초의 해명은,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를 포함한 미국대사관 네곳을 공격하려 했다고 대통령이 ‘믿었다는’ 데 국방장관 등도 동의했다는 것으로 후퇴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솔레이마니가 시아파 민병대 등을 통해 미국에 가한 위해에 이제야 대응한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솔레이마니 암살이 총체적 실패임은 결과로 나타난다. 동맹국의 지지는 표명되지 않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하원이 대통령의 전쟁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란은 핵합의 탈퇴를 선언했고, 이라크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 결과가 트럼프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를 무시하는 ‘대테러전쟁’의 권한을 9·11테러 이후 의회가 대통령에게 백지위임한 것이 큰 원인이며, 드론 공격은 오바마 정부 때부터 일상화된 것이다. 경제제재 역시 트럼프의 발명품이 아니라 미국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치국술’이다.

한미동맹도 전반적인 재조정이 필요

좀더 거시적으로 보면 2차대전 이후 미국 의회가 헌법에 따라 전쟁을 선포한 적은 없고 후발 제국주의 주자로서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핵심 축으로 해왔으며, 미국 패권은 미국체제가 이념적 우위에 있다는 근본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트럼프 정부 내에서 강경한 이란 정책을 주창해온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는 복음주의자이고, 트럼프는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태의 기억을 환기하면서도 그 배경인 이란혁명이 1953년 미국이 쿠데타로 건설한 팔레비 왕조에 대항한 것이었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이단’과 워싱턴의 패권기제와 관성이 착종된 현재 트럼프 정부의 전략적 난맥상 역시 미국의 기존 중동정책 및 자신의 오류와 과오를 기억하지 않는 ‘망각의 제국’(United States of Amnesia)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트럼프-워싱턴의 지금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책임은 지지 않지만, 자신의 특권을 위한 군사적·경제적 압력은 최대화하려 한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패권에 편승하는 비용은 점점 증가하고 그 이익은 감소한다. 거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내 지지기반도 약해서 정책의 정당성이나 연속성을 보장받기도 힘들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전반적인 재조정에 착수해야 하며, 호르무즈 파병 역시 성급하고 위험하다. 우리는 미국-이란 갈등의 직접적 원인이 국제법·국내법을 무시하고 이란핵협상을 파기한 트럼프 행정부에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약속 대련’ 과정에서 실수로 우크라이나 민항기를 격추해 경제제재와 반정부시위라는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의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7일간의 위기’가 던져준 과제는 핵·미사일·드론 공격, 그리고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에 가했고 이란이 반격을 준비 중이라고 미국이 경고하는) 사이버테러의 위험까지 낮추는 전반적인 군축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만 미사일이나 폭탄의 위협뿐 아니라 경제제재로 인한 극심한 가난에서도 무구한 민간인을 보호하는 인도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2

관련기사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