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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대’와 새로운 정치

기사승인 2020.01.09  17: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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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알라를 걱정하는 당신, 강 건너 불구경?

‘불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세계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여름 세계를 놀라게 한 아마존 화재가 조금씩 잊히는가 싶더니 새해부터 호주가 해를 넘겨 몇달째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년 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큰 산불이 발생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작년 봄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서 산불이 일어나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 전례없는 대형 산불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호주 남동부 지역. 인명 피해 뿐 아니라 호주를 상징하는 코알라 등 야생동물과 가축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출처:the Sun)

시베리아와 극지방에서도 예전에 없던 화재가 이어지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아마존에서는 사람이 놓은 불이 번져서 삼림을 태우는 중이다. 산불이야 해마다 있었다지만 이제 그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뭇 생명이 모두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후위기의 영향이다, 그게 아니라 일시적인 원인이다 논란이 많지만 변화하는 기후 양상이 지구를 화재에 취약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또한 계속되는 대형 화재들은 그 자체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기후 난민을 양산하고 여러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는 등 더 큰 생태계 위기를 유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큰불이라도 사람들이 곧바로 위기로 인지하지는 않는다. 아마존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것은 작년 7월경인데, 일어난 지 한달이 되도록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각 외신들이 붉게 타오르는 위성사진과 연기로 자욱해진 상파울루 대도시의 사진을 보도하면서 갑자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삶의 터전을 잃을 때는 관심 없던 사람들이 연기가 대도시에 미치니까 비로소 나타났다”라는 한 원주민 지도자의 인터뷰 발언처럼 모든 위기상황이 공평한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의 위기일 때는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세계의 허파’인 아마존이 모두 불타버리고 나면 전지구적 기후위기가 더 심해져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아마존을 걱정했다.

최대 쇠고기 수출국가인 브라질이 목축을 위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불을 놓아서 생기는 문제들이니 채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잠깐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화재가 잦아들면서 세간의 관심도 식었다. 인도네시아와 시베리아의 산불이 외신에 소개가 안 된 것은 아니지만, 큰 관심은 끌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캘리포니아, 아마존, 시베리아의 화재를 합한 것보다도 더 큰 면적을 태우고 있다는 호주의 산불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이번 산불은 야생동물에게도 큰 피해를 끼쳐서 현재까지 4억8천만마리 이상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호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캥거루와 코알라 등 유대류의 피해가 커서 멸종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코알라 서식지의 30%가 파괴되었고, 뉴사우스웨일즈 중북부 해안에서는 전체 코알라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8천마리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약하고 느리고 순한 이미지 때문에 코알라는 이번 호주 산불 피해의 상징이 되었다. 대륙 전체를 태우고 있는 큰불은 일반 사람이 이입하기에는 너무 큰 현상이라서 그런지, 마음을 이입할 만한 대상으로 코알라라는 상징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마존과 호주의 산불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일단 아마존의 삼림에서는 저절로 불이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의 대규모 화재는 농민, 목장주, 벌목꾼 등이 고의로 지른 것이다. 숲에 불을 놓아서 생존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는 행위는 밀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 역시 해오던 일이다.

하지만 일정 기간 후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나무가 다시 자랄 수 있게 했던 원주민들의 관행과는 달리 최근의 방화는 영구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차이가 있다. 자급 목적이 아니라 대규모 해외수출을 위한 농지와 목초지 확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호주의 산불은 늘 일어나는 현상이었고, 식생 자체가 주기적으로 불이 나는 건조한 기후에 적응해 있다는 점에서 산불은 일상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산불이 규모뿐 아니라 지속기간 면에서 그런 일상적 차원을 넘어서버렸다는 점이다.

광범위한 가뭄으로 인한 매우 낮은 습도, 평균보다 높은 기온, 그리고 ‘남반구 극진동’(Southern Annular Mode)에 의해 유발되는 강한 서풍. 하나하나는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지만 기후변화 속에서 산불이 극대화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냈다. 전소된 면적이 남한 땅의 절반 규모를 넘어선다고도 하고, 뉴사우스웨일즈주와 빅토리아주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10만명 이상의 주민에게 긴급대피령이 내려졌다.

한편 브라질과 호주의 공통점도 있다. 재난 상황에서 보인 정치와 지도자의 역할이다. 브라질의 경우 이 사태의 일차적이고도 결정적인 책임자로 지목받는 사람은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브라질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이후 채 1년이 안 되는 집권 기간에 환경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하고, 국립공원 민영화, 아마존강 수력발전소와 다리 건설 등을 추진했다. 동시에 지역 원주민의 권리를 탄압하면서 각종 환경규제의 빗장을 풀고 개발정책을 밀어붙였다. 심지어는 산불사태 초기에 진화를 돕겠다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내정간섭이라고 거절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산불이 확산되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와중에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물의를 일으킨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호주 총리도 기후위기를 부정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주 국민들은 산불을 촉발한 근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면서 여기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모리슨 정부를 강하게 비했다.

모리슨 총리는 그 이후에야 겨우 “기후변화가 산불 재앙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석탄산업을 축소할 수는 없다며, 환경친화적인 산업구조 재편에는 강하게 맞선다.

미증유의 대규모 기후참사들이 그 자체로 큰 경각심을 일으키는 듯하지만, 위기에 대한 토의가 산업구조 조정이나 국제관계 같은 현실적인 차원에 이르면 금세 종결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코알라는 불쌍하지만 한 사회의 구조적인 빈곤은 어려운 문제이고, 대도시의 하늘에 드리운 연기는 남의 일 같지 않아도 재난 지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계는 내가 어찌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미세먼지, 돼지열병을 비롯한 전염병과 살처분, 지난봄 산불의 복구와 배상이 종결되기도 전에 연말에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 등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문제 등 이제 한국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체감이 ‘내 문제’라는 인식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또다른 차원의 고민이 뒤엉킨다.

결국 생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먹고사는 문제, 사회불평등의 문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이는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된 올해에는 지역의 일상적인 눈높이에서 생태와 생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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