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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마음의 개벽(開闢)을 꿈꾸는가

기사승인 2019.09.20  1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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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율성 오페라 ‘망부운’, 애잔한 중국설화 무등에 걸다

학생들 책가방에 이미 ‘역사’가 없으니 폭력적인 또는 게임 같은 스펙터클이라도 덧붙여야 관심들 갖겠지, ‘봉오동 전투’는 그렇게 ‘쿨’하기도 하지만 선열(先烈)들의 처절한 청년정신이 빚은 피어린 장면들이다. 그들,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영화에서나마 역사는 배워야 한다.

▲ 광주시립오페라단 공연 ‘망부운’(정갑균 감독)의 한 장면.

김원봉 등의 숭고한 결사(決死)의 애국이 나중에 ‘민주주의’를 향하지 않았으니 죄악이라고? 역사 없는 얼빠진 교육이 부른 무지(無知)다. 1백 년 전 의열단에 오늘에야 가슴 숙이는 만시지탄의 함성이 ‘밀정’ ‘암살’ 등의 제목들로 청년들 가슴 잇따라 두들긴다. 우리, 결코 쩨쩨할 수 없는 겨레임을 다시 안다. 주석 김구나 장군 안중근 등 그들의 동지들 이름도 떠올린다.

익숙한 듯 낯선 이름 ‘망부운’도 새겨야 한다. 중국에서 첩보전 요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우리의 독립을 지원하는 중국의 세력에 영감(靈感)의 음악을 준 조선의열단의 작곡가 정율성(鄭律成 1914~1976)의 거작 오페라다. 의열단(義烈團)은 ‘정의를 맹렬히 실행하는 모임’의 뜻이다.

정율성은 무등산 기슭의 독립운동 가문 출신이다. 세 형과 누나도 독립운동을 했다. 망명지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운 그는 파리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돌아와 중국 음악계의 스타가 된다.

‘혁명의 군악(軍樂)’으로 오늘날까지도 천안문광장 등에서 중국 군대 행진의 보무(步武)를 공식적으로 선동하는 곡들을 그는 지었다. 동양적인 정서도 품은 당당한 그 선율을 중국인들은 사랑한다. ‘중국 현대음악의 별’이라고 칭송한다.

지아비 기다리다 고갯마루에 서서 돌이 돼버린 ‘망부석’, 이와 닮은 ‘망부운(望夫雲)’은 거침없는 젊음의 에너지까지 품은 중국 운남성의 소수민족 백족(白族)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다. ‘연안송(延安頌)’ ‘중국인민해방군가’ 등의 정율성의 이미지와 딴판이다.

백옥 빛 대리석 봉우리 사이 호수를 거센 바람으로 휘젓는 한 줄기 구름(雲 운), 공주 영혼의 광란은 저 구하다 쓰러진 연인이 바닥에서 바위로 드러나자 잦아든다. 이 지역 대리(大理)의 기후도 얽힌 설화다. 이탈리아 카라라와 견주는 대리석(마블) 생산지다. 돌 이름이 어원이다.

정율성의 마음에는 고국 망부석의 서정도 또렷했겠다. 무등산의 서석대나 적벽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번역과 기획에 참여한 전남대 양회석 교수(중문학)는 “서양 산(産)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였던 당시 중국에 동아시아 가치의 본디를 일깨우는 그의 마음이 읽힌다.”고 설명한다.

합창 무용 오케스트라 등 큰 규모의 오페라로 지어진 ‘망부운’은 1962년 중국에서 주은래 등 지도자들의 관심과 화제 속에 초연됐다. 그리고는 문화대혁명(1966~1976)의 피바람이 닥친다. 그 구름은, 오래 스러져 있다가 지난 3월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57년 만에 다시 피어났다.

동아시아의 아름다움이 인류를 향하는 항해, 그 두 번째이면서 정식 출범(出帆)인 것이다. 서양(남성)을 원하는 일본(여자)의 유명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과는 바탕 정조가 다르다. 또 망부석 설화와 함께 동아시아의 정서가 인류에 기여할 보편성을 지닌다. 독일서 활동한 작곡가 윤이상이 심청의 설화를 오페라로 지어 인류의 재산으로 승화시킨 예를 생각한다.

광주는 희한한 역량을 지녔다. 중국도, 서울도 못 끄집어낸 중국의 대형 오페라를 너끈히 소화했다. 비슷한 시기 광주의 무용인들이 로맨틱 발레의 국제적 표상이라 할 ‘라 실피드’를 공연해 국내외 공연예술계의 탄성을 부른 사실도 새삼스럽게 떠올려본다.

서울의 관점이겠지만, 국제적 안목과 기량의 음악가 정갑균과 관록의 발레리나 최태지가 전통예술로 정평 있는 이 지역을 새 이미지로 흔들고 있는 것 같다. 우연인지, 이 두 인사는 지금 함께 광주 예술단체의 예술감독이다. 정율성을 배출한 이 지역은 소위 ‘전국구’ 예술가로 첫 손가락 꼽히는 인사들을 불러 남도 마음의 개벽(開闢)을 꿈꾸는 것인가.

▲ ‘중국 현대음악의 별’로 일컬어지는 음악가 정율성. 오페라 ‘망부운’으로 동아시아의 마음을 인류에 투사(投射)했다.

토/막/새/김

오페라 망부운, 동아시아 정서 가득

‘율성’은 선율(律)을 이룬다(成)고 풀 수 있지만, 더 깊은 뜻이 있다. 그 律은 서양식 ‘멜로디’를 넘어 ‘율려’의 뜻, 그 준말이라는 것이다.

서양 음계와 대비되는 율려(律呂)는 고대 동아시아 음악의 기본이다. 양(陽)의 6률과 음(陰)의 6려로 짜이며, 율은 볕(陽)을 여는 그늘(陰)을 상징한다. 음악 판(版) 음양사상인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율려를 우리 몸 깊이 새겨진 자연의 질서로 본다. 환경파괴와 물질만능주의로 위기에 빠진 인류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개벽을 위한 ‘율려운동’을 주창했다. 그의 시심(詩心)이 빚은 생명사상의 행동강령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즐기는 (서양)가락이 우리(겨레)의 원래 바탕과 같지 않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국악을 접하며 실감할 수 있다. 오페라 ‘망부운’은 서양의 틀로 지어졌지만, 그 바탕에 동아시아 정서가 물씬하다. 율려를 이루고 있음인가.

강상헌 기자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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