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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다

기사승인 2017.06.08  11: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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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저녁 부산 괴정동 소재 회화나무 샘터공원에서

사하구청이 주최하고 사하문화원·괴정1동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한 무료영화 ‘덕혜옹주’ 상영과 ‘생활음악회 및 작품전시회’가 7일 저녁 회화나무 샘터공원에서 최영진 시의원, 노승중 구의원, 배진수 구의원, 변윤경 괴정 1동장과 주민 및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영진 시의원(경제문화위·괴정1~4동)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덕혜옹주는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부터 공포에 휩싸여 살았으며, 신식 여성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간 뒤에는 우울증에 고독감까지 생겼다. 공주가 아닌 옹주였지만 역사 앞에 당당하려 했던 덕혜의 삶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민족의 비극이자 역사의 교훈임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1부 음악회 2부 영화 상영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는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덕혜옹주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던 해, 덕수궁에서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아이가 바로 고종이 뒤늦게 양귀인으로부터 얻은 고명 딸, 덕혜옹주다. 고종은 그녀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치원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덕수궁 내 처소인 함녕전으로 덕혜옹주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렇듯 덕혜옹주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고종황제에게 한 줄기 삶의 낙이 되었고, 그녀는 잠시나마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19년 고종황제 승하 후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제는...

양병철 기자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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