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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기침하는 시궁쥐와 사자

기사승인 2016.11.12  23: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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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선의 금수회의록

▲ 해림한정선

사자의 갈기를 둥지로 삼은 쥐가 있었다. 숲속 시궁창에 살던 시궁쥐였다. 시궁쥐가 사자와 한 몸이 되어 동거 동락하게 된 것은 궁지에 빠진 사자를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자는 초식동물들의 언덕을 빼앗아 독차지 하려다 발을 헛디뎌 컴컴한 시궁창으로 빠졌었다.

사자는 자기가 표시해놓은 언덕에서 풀을 뜯거나 사냥을 하는 놈은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벼르던 중, 덤불 위에 걸쳐진 어떤 짐승의 털 오라기 뭉치를 보고 화가 치밀어 훌쩍 뛰었다. 그런데 덤불 밑은 시궁창이었다. 사자는 죽을 힘을 다해 뜀박질을 하고 이끼 낀 벽을 기어올랐다. 연거푸 미끄러져 굴렀다. 사자가 기어오르기를 포기하고 까마득한 위를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릴 때, 조막만한 시궁쥐가 가까이 다가와 에헴에헴 목 다듬는 소리를 냈다.

시궁쥐는 갈기 속에서 살게 해주면 사자를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숲속 왕의 자리에도 앉혀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했다. 다급해진 사자는 단번에, 갈기 쯤이야 평생 내어줄 것이니 나가게만 해달라며 왕이 되면 시궁쥐에게 숲 절반을 떼어주겠다고 맹세했다. 시궁쥐는 당장 넝쿨나무 줄기들을 물고 와 얼기설기 얽어 구덩이 벽에 걸쳐주었다. 사자가 넝쿨나무 줄기를 밟고 밖으로 나오자, 앞서 나가있던 시궁쥐는 주둥이를 치켜세우고 아주 크게 에헴 했다. 사자가 무릎을 꿇고 시궁쥐에게 갈기를 내밀었다.

시궁쥐는 오래전부터 사자의 바위굴 천정에 난 구멍을 통해 사자를 훔쳐보던 염탐꾼 생쥐였다. 하지만 판단력과 식별력이 현저히 부족한 사자는 그게 시궁쥐였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시궁쥐는 사자의 생활반경,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사냥 시간과 사냥장소, 사냥감 종류 따위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있었고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사이가 나쁜지 죄다 꿰고 있었다.

다른 짐승들의 습성에 대해서도 빠삭했다. 풀밭에 묻어있는 체취나 털만으로도 누구인지 알아냈고 누가 누구랑 싸워서 갈라설 것인지를 점을 쳐 맞췄다. 짐승들의 토굴에 뚫린 자잘한 구멍들은 시궁쥐의 길이었다. 구멍은 땅 속 깊게 여러 갈래 길로 나뉘어 조밀하게 파인 지하도로, 맹수들의 굴에서부터, 크고 작은 초식동물들의 토굴, 뱀 굴, 개미굴, 숲속 음식창고와 무덤들까지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시궁창과 이어져 있었다.

시궁쥐 말대로, 몇 년 후 사자가 숲속 왕이 되었다. 시궁쥐는 사자 갈기 사이로 눈만 내놓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발끝에 흙을 묻히지 않았다. 사자가 동물들을 호령할 때, 시궁쥐는 사자의 목과 머리를 오르내리고 귓속과 콧속을 들락날락거리며 사자를 맘대로 부렸다. 시궁쥐는 에헴 소리 수와 높낮이를 달리해 지시하고 사자는 그것에 따라 어김없이 움직였다.

시궁쥐는 만약 사자가 헛기침 수대로 따르지 않으면 목을 깍깍 깨물었고, 자신한테 밉보인 자를 물어 죽이지 않거나 보물을 원하는 만큼 가져오지 않을 때는 사자 귓속 달팽이관으로 들어가 발톱으로 후벼 팠다. 그러면 사자는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뒹굴다 튕겨나가듯 뛰어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사자 귀가 꽉 먹었다.

그동안, 숲 곳곳이 황폐해졌다. 시궁쥐 친족이 숲지기를 도맡았고 중요한 자리는 거의 시궁쥐새끼들이 차지했으며 숲의 보물이 그들의 비밀저장고로 옮겨져 숲의 곳간들은 텅 비었다. 허기진 동물들이 동족을 뜯어 먹는 일이 벌어지고, 희망을 잃고 벼랑으로 뛰어내리는 동물들의 수가 셀 수 없었다.

숲속 동물들이 숲을 해친 귀머거리 사자를 끌어내 숲에서 쫓아냈다.

사자는 숲 근처를 배회하며 여전히 시궁쥐를 불러댔다. 그러나 시궁쥐는 이미 젊고 힘센 다른 사자의 갈기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애초에 사자가 시궁창에 빠진 것은 시궁쥐의 계략이었다. 시궁쥐가 사자를 유인하기 위해 초식동물들의 털 오라기 한 뭉치를 물어다 시궁창 옆 덤불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사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갈기를 감히, 흔들어 털지 못했다.

한정선 helimsea@naver.com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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